INTRO
대학에서 디자인을 몇 년이나 배웠는데 충무로에만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우리의 가엾은 초보 디자이너들이여!
말도 안 되는 데이터를 들고 와서는 뭐든지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누가 이렇게 해서 가지고 가라고 했냐고 물으면, 대답들은 매한가지.
“아니, 그게 아니고···. 교수님이 이렇게 가져가면 된다고 했는데요.”
하아... 답답하고 불쌍한 이 어린양들을 어찌할꼬! 내가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가르쳐 줄 터이니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잠시 집에 두고 오너라.
이제부터 충무로의 모든 것을 전수할 것이니,
나를 충무로 교수로 믿고 따르도록!
시작하기에 앞서
충무로 교수님으로 임용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충무로 교수님이 계신 회사를 소개해 주세요.
저희 회사는 충무로 소재 3개 법인이 있고, 각각 전문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A사는 모회사로 출판, 인쇄, 디자인 전문 회사입니다. B사는 POD(Print on demand)를 전문으로 하고 있고, C사는 CTP(Computer to plate)를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 교수님, 인쇄 공정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다양한 인쇄 공정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인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옵셋 인쇄(offset-printing)가 있습니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쇄 방식입니다. 알루미늄 재질의 P.S.판 (Presensitized Plate)을 옵셋 인쇄기에 걸고, 물과 기름의 반발 성질을 이용하여 인쇄하는 방식입니다. CTP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데이터→필름 출력→제판(인쇄용 판을 만드는 것)→옵셋 인쇄→후가공 순이었는데, 현재의 인쇄 공정은 데이터→CTP출력→옵셋 인쇄→후가공입니다. 필름 출력과 제판 부분이 사라진 것입니다. 대량 인쇄물에 적합하고, 다양한 재질의 용지를 사용하여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여분의 종이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는 디지털 인쇄(Digital Printing)가 있습니다. 디지털 인쇄는 크게 토너를 사용하는 레이저 방식, 잉크를 사용하는 잉크젯 방식, 자성잉크를 사용하는 인디고 방식이 있습니다. 디지털 인쇄 공정은 데이터→디지털 인쇄→후가공입니다. 옵셋 인쇄에 있는 P.S.판 과정이 없고, 데이터에서 바로 인쇄가 가능한 방식입니다. 다종, 소량 인쇄물에 적합 합니다.
장점은 옵셋 인쇄에 비해 준비 시간이 짧고 여분의 종이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단점은 옵셋인쇄에 비해 수량이 많아지면 단가가 올라갑니다.
다양한 인쇄 공정이 있네요. 이곳에서 교수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제 역할은 제작에 앞서 프로젝트를 충분히 숙지하고 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제작 사양(판형 및 종이와 인쇄방식, 후가공 등)을 컨설팅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이 업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쇄 제작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 제작해주고 사고만 나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데, 저는 저 만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제안한 사양(종이, 인쇄 방식 등)으로 제작해서 결과물이 더 좋게 나온 경우입니다. 클라이언트의 만족하는 표정을 보면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그럼 교수님, 이번에 소개할 프로젝트에 대하여 알려 주세요.
처음 수업부터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걸 하면 질릴 거 같아 간단한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S사의 CD 케이스 제작입니다. 제작 공정은 크게 6가지입니다. CTP 출력, 옵셋 인쇄, 라미네이팅, 실크 에폭시, 도무송, 접착으로 진행됩니다. 순서대로 하나씩 살펴볼까요?
1. CTP출력
옵셋 인쇄를 위해 CTP 출력을 해야 합니다. 우선 CTP 출력소에 데이터를 접수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매킨토시에서 작업한 쿽익스프레스 데이터를 많이 썼지만 현재는 인디자인이나 일러스트에서 작업한 PDF를 많이 사용합니다. PDF 데이터를 접수하면 CTP출력소에서 검판용 PDF(‘리파인’이라고도 함)를 다시 보내줍니다. 검판용 PDF에서 데이터에 문제가 없다면 CTP를 출력하는데, S사의 CD 케이스는 원색이니까 *CMYK 총 4판 이겠군요.
※CMYK
마젠타(Magenta, 보랏빛이 도는 빨강), 시안(Cyan, 초록빛이 도는 파랑), 노랑, 검정을 원색으로 사용한다. CMYK 감산 혼합은 명도를 낮추는 혼합을 말하고 섞으면 푸른색이 도는 검은색이 된다.
2. 옵셋 인쇄
CTP출력소에서 인쇄소로 CTP판을 배달하고, 인쇄할 종이가 도착하면 *옵셋 인쇄를 시작합니다. 인쇄 준비 과정 은 보통 30분 정도 소요되고, 인쇄물을 확인하는 과정을 감리라고 합니다. 인쇄 시간은 난이도와 양에 따라 결정되며, 인쇄가 완료되면 건조를 합니다. 건조 시간은 종이와 잉크의 양에 따라 결정되며, S사의 CD 케이스는 잉크 양이 많은 *풀빼다라 하루 정도 건조하였습니다.
※옵셋 인쇄 / 오프셋 인쇄
인쇄판과 블랭킷(고무롤러)을 사용해서 종이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물과 기름의 반발 성질을 이용한다.
대표적인 간접 인쇄 방식이다.
※풀빼다
인쇄물 전체에 색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말한다. 잉크가 많이 들어가고 뒷묻음이 심해 인쇄소에서 반가워하지 않는다.
3. 라미네이팅
건조가 완료된 인쇄물은 라미네이팅을 합니다. 라미네이팅 종류는 크게 무광, 유광으로 두 가지이며 그 외에도 벨벳, 엠보, 모래알 등이 있습니다. S사의 CD 케이스는 무광으로 진행했습니다.
4. 실크스크린 에폭시
무광 라미네이팅이 완료된 인쇄물 위에 에폭시를 올리는 작업입니다.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실크판과 필름이 필요한데, 실크스크린 인쇄와 같은 원리입니다. 필름으로 실크판에 제판하면 막이 형성되고 막이 없는 부분에 바니쉬 액(실크 용액)이 들어갑니다. 그곳에 열을 가하면 광택과 함께 살짝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5. 도무송 (톰슨)
인쇄물을 원하는 모양으로 자를 때 사용합니다. 우선 칼이 필요한데, 나무판에 칼을 달아 만드는 것을 목형이라고 합니다. CD 케이스 모양의 목형을 만들어서 도무송 기계에 걸어 종이를 한 장씩 찍어내는 작업입니다.
6. 접착
도무송이 완료된 인쇄물은 임가공업체에서 마지막 작업을 합니다. 접착 면을 접어 양면테이프 붙이고 포장을 하면 모든 제작 과정이 완료됩니다.
이로써 S사의 CD 케이스 제작 프로젝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의 작업물이나, 적은 수량의 인쇄물 작업도 진행하시나요?
물론 가능합니다. 충무로에는 실력 있는 인쇄소들이 많으니 직접 찾아가시면 됩니다. 처음 인쇄물을 제작하는 경우, 번거로우시더라도 꼭 상담을 받고 진행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작업이 끝나면 바로 PDF 데이터를 가지고 오시는 경우가 많은데, 인쇄 제작 과정에서 오류가 많아서 다시 작업해 오시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처음 제작하시는 경우라면 꼭 미리 가셔서 상담을 받으세요.
교수님, 오늘 하늘과 같은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다음 시간에는 만화와 출판 사업에 대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제가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라서요. 기존 옵셋 인쇄에서 벗어나 디지털 인쇄가 가진 장점을 활용하면 만화 산업 전반에 큰 시너지 효과를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만화 출판 산업에서는 신인 작가들과 작품 수가 늘어나는 반면 제작 부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디지털 인쇄가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옵셋 인쇄처럼 대량으로 제작하지 않아 재고 부담이 없고, 주문하고 하루 이틀이면 따끈따끈 한 책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만화 절판 서적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훌륭한 작품들을 디지털 인쇄를 통해 독자들 손에 쥐어주고 싶습니다. 관심 있는 작가, 출판사들은 꼭 연락 주세요. 그리고 이번 수업은 끝났지만 기타 다른 인쇄 및 공정 과정이 궁금한 학생들 충무로 교수를 통해 제보하시기 바랍니다. 충무로 교수의 수강생이 되는 거죠.
'무료강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강>SUBSUB 작가의 <섭섭한 그림책> 제작기 (2) | 2020.03.26 |
---|---|
<제4강>그림쟁이를 위한 연필 그림 스캔 및 컬러링 방법 (0) | 2020.03.26 |
<제3강>H사 종합샘플북 <종이가방> 프로토타입 제작기 (0) | 2020.03.26 |
<제2강> 인쇄 초보자를 위한 당부하는 말! 말! 말! (0) | 2020.03.25 |